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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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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는 작은 새는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따스한 행운인지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밀려나 추락하는 순간에 도달해야만 자신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었는지, 그 바깥은 얼마나 춥고 혹독한 곳인지 깨닫는다. 키코의 아버지는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빈말로도 화목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처음 겪어보는 상실의 무게는 어쩔 수 없이 버거웠다. 그럼에도 키코에게는 남은 것이 있었기에, 그는 그것들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퍼즐보다는 젠가 같아서 어느 한 조각을 빼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어떤 불행은 다른 불행을 낳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던 듯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두려웠던 건지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삶이 무서웠던 건지, 혹은 버팀목 없이 헤쳐가야 할 지난한 외로움에 압도되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자주 집을 비우는 어머니, 싸늘하게 식어가던 집과 굶주린 배. 집에 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한참이나 무언가를 중얼대기만 하던 어머니가 실로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키코를 안아 주었던 날. 키코는 이제 모든 불행이 막을 내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줄만 알았다.

 

어머니는 키코를 낙원으로 인도하겠다며 본원이라는 곳으로 이끌었다. 말라가던 어머니를 울고 웃게 만든 것은 그즈음 전국적으로 퍼져 있었던 신흥종교였다. 교주를 믿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어머니의 세상에서는 어느새 그것이 불변하는 세계의 이치가 되어 있었다. 지구가 빙글빙글 돌아간다는 것보다, 이별에도 죽음이 있다는 것보다도 더 우선하는 진리는 교주를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키코가 그를 믿게 되는 일은 영영 없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은 입술에 잘만 올랐다. 진실을 말하면 가해지는 폭행, 빛 하나 들지 않는 방에서 흐르는 시간은 사람을 손쉽게 바꾼다. 반면 말에는 힘이 없었다. 차라리 정말 믿을 수만 있다면. 함께 미쳐 이 모든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키코가 아무리 믿는다 말한들 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천운이 따라 그곳을 탈출한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과 믿음과 자신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혐오스러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증오하는 것은, 그럼에도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존재의 이름은

 

 

엄마, 엄마 ······. 저 무서워요, 저를 이런 깜깜한 곳에 혼자 두지 마요, 처음 갇혔던 날처럼 키코는 울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 거예요, 당신의 눈에 빛이 꺼져가요. 꼭 죽은 사람처럼 보여요. 나를 여기에 가둔 건 당신이면서 왜 홀로 떠나버리는 거예요? 돌아와요, 돌아와요, 엄마를 흔들어 깨우기 위해 팔을 움직였으나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시야가 뒤집힌다. 아직 따뜻한, 그러나 맥동이 느껴지지 않는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은 키코 자신의 손이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떨림은 온몸을 덮쳤다. 유일하게 남은 피붙이를, 나를 낳은이를, 나를 차가운 바닥에 방치한 자를, 나의 어머니를, 이 손으로 죽였다. 죄책감인지 해방감인지,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두근거림이 점차 소리를 키운다. 긴 이명이 들리고 사고는 더 이어지지 못한다.

 

 

어떤 정보도 더 받아들이기를 포기한 이의 공허한 눈에 일순 빛이 든다. 또다시 그 남자였다. 신우원. 과거 골목에서의 형상이 겹쳤다. 그는 늘 막다른 곳에서 손을 내민다. 세계가 통째로 삼켜지는 듯한 울렁거림, 지금껏 알고 있던 모든 정의가 재조립되는 느낌, 저 사람에게 기대어 모든 것을 내맡기고 싶다는 욕망.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키코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그토록 맹렬하고 거대하게 온몸을 덮치는 감정의 이름을 이 세상에서 오로지 딱 하나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엄마가 그를 학대한 이유였다. 엄마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오직 하나에게만 매달리도록 만든 힘이었다. 신앙심이라고 부르는 마음이었다.

 

어머니 나는 이제야 당신을 이해하겠어요 당신도 본 거죠 이토록 찬란한 빛을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하등 중요치 않게 만드는 절대자를 이 자를 따른다면 나라는 존재는 흔적 없이 바스러져버려도 더 이상은 그 따위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그리하여 이토록 완벽한 구원은 오직 이 자만이 내게 줄 수 있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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